득남!


월요일 수업 전의 일이다. 멕시코 문화사 듣는 더스틴이라는 녀석이 빼꼼이 사무실 안으로 머리를 들이밀길래 들어오라 했더니 손에는 뭔가가 한아름 들려있었다.  추수감사절에 집에 갔다가 혼자 사는 내가 생각나서 그리고 한국사람 매운 거 잘먹는다고 해서 집에서 농사지은 콜로라도 고추를 좀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덤으로 저렇게 말린 고추더미도 놓고 갔다. 일단 고추는 과사무실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집으로 가져가고 말린 꾸러미는 사무실 안에 놔두었었는데 오늘 와보니 냄새가 배어 사진에서처럼 사무실 밖 문에다 걸어놓았다. 막상 그래놓고 보니 아들 낳았다고 떡하니 걸어놓은 거 같단 말이지, 웃기게도. 하지만 웃으라고 학기말까지 걸어두고 있으련다.

근데 좀 더 있다보니 또 웃긴거야. 내가 무슨 섬마을 선생님, 아니 강원도 산골 마을에 온 선생 김봉두 같다는 생각이 든거야. 우리로 얘기하면 어떤 애가 집에서 기른 청양고추를 가져온 셈인거 아닌가? 고맙고 감격스럽긴 한데 내가 정말로 시골에 살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셨단 말이지. 그래, 난 이제 시골쥐야, 서울가면 코베이지 않도록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쥐. 

by jardin | 2009/12/02 17:51 | 트랙백 | 덧글(5)

Thanksgiving break-'down'

예상대로 일주일이 하염없이 흘러가고 내일 수업 세개가 기다리고 있다. 이제 하나는 초안을 준비해야 하는데 일단 나오는 한숨을 들이마시고 잠시 지난 여름 멕시코 여행갔던 즐거운 날들을 떠올려본다. 

테오티우아칸 태양신전을 한계단씩 내려가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더랬나? 글쎄, 아마도 그 많은 계단을 내려가는 데 집중하고 있지 않았을까, 무아지경도 아님 세상살이 걱정도 아닌 그냥 내려가는 것 그 자체에 집중하기. 

그게 쿨한 것이라면 쿨한 것이겠지.  그렇게 추수감사절을 보내고 싶었어. 괜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족이니, 한국 사람들이니까 이럴때 한번 모여야지, 혼자 있으면 불쌍하게 보일테니 저녁은 어딘가에 끼어서 즐겁게 보내야지.. 라는 말들을 쿨하게 반으로 접어주시고 기말을 학문적으로 알차게 보내자고 계획도 단단히 세웠지. 쿨하게 하루 후배들이랑 덴버 근처의 카지노 부페에 가서 알라스카산 게들로 배를 채우시고, 이후로는 그냥 집에서 계획대로 보냈어. 물론, 새벽 쇼핑 대열에 좀 가담해서 크게 쓸 데 없는 것들도 좀 사주시고 말이야. 

집이 지겨우면 근처 별다방에서 몇시간 개겨주시면서 이럭저럭 과제들을 해내간다는 쿨한 보람을 조금 느껴가면서 말이야. 적어도 토요일 오후까지는 말이지. 토요일도 카페에서 논문을 좀 쓰다가 어둑어둑해 지길래 짐을 챙기다 커피를 마시러 온 내 수업을 듣는 학생을 만났지. 멕시코에서 이민온 친구인데 나이도 여느 대학생보다는 훨씬 많고 느낌상 추수감사절에 여기 있는 걸 보니 왠지 나랑 같은 처지가 아닌가 하며 어색한 인사를 나눴어. 역시나 서로 별 특별한 일 없이 공부랑 일했다는 것이고 그러니 토요일 이시간에 별다방에 와 있는 거겠지. 이유를 모르지만 갑작스레 그 여학생에게 안스런 마음이 드는거야. 아니 다들 함께하는 이 때에 혼자 여기서 이러고 있다니 말이야. 근데 그러다 내가 그 처지보다 못하면 못했지 나을 거 하나 없다는 생각까지 미치게 된거지, 왠지는 모르겠어. 

갑자기 내 쿨함이, 쿨하고자 했던 계획이 한 순간 허물어지는 느낌이 드는거야. 딜레탕트하고 조금은 snobbish한 민족이나 정에 끌리는 촌스러움은 슬쩍 무시하여 주시는 한차원 다른 사람에서, 이 세상 가장 처량한 놈이 되버린 기분, 이해하겠어? 이게 내가 진정한 '쿨'함의 경지에 이르지 못해서일까? 아님 '쿨'하다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헛똑똑이가 가지는  하나의 fetish 인 것일까? 


by jardin | 2009/11/30 15:08 | 트랙백 | 덧글(12)

Thanksgiving break

추수 감사절 방학이 시작되었다. 오늘 세과목 수업을 끝내고 긴 잠을 자고 일어나서 몇 가지 이메일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이번 주 쉬고나면 학기 마지막 주와 기말 고사 기간 일주일이 남았으니 쉬어가는 기간이라고 해도 그렇게 넋놓고 있지만은 못하겠다. 하여서 이번에는 반/드/시/ 생산적인 휴일이 되야한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다. 왠만하면 약속을 잡지 않고, 쇼핑도 블랙 후라이데이 하루만 가며 각종 산적한 일꺼리와 밀린 채점을 해치우고 페이퍼도 초벌 마무리를 하는 신공을 발휘하자는 것이다. 

정리를 해보자면,

1- 작문 채점 
2- 프레젠테이션 채점 마무리
3- 사무실 청소
4- 집 청소
5- 다음 학기 수업 실라바이 준비 착수
6- 기말 시험 문제 내기
7- 페이퍼 완성
8- 조카 옷 쇼핑 (이라는 핑계를 대고 내 옷 등을 지를 만반의 준비)

음, 그러나 결론은 반만 하면 대성공이라는 것인데 그래도 이렇게라도 계획을 빡빡하게 세워놓지 않으면 5일간의 휴일이 소리없이 후다닥 지나가 버린다는 거다. 하여 일부러 내일부터 단단이 조여 계획 실행에 돌입하는 것이다. 마음은 여유롭게 허나 몸은 바쁘게, 이번 일주일의 좌우명으로 삼으련다.

덧글
1. 아, 이제 곧 연말까지 하염없이 캐롤을 듣게 생겼고나, 어째 여기는 추수감사절만 지나면 바로 주야장창 크리스마스 모드인거냐.
2. 한국 친구들 연락처 적은 노트가 분실되었다. 또, 가서 연락 안한다고 개 욕 들어먹게 생겼다. 
3. 근데.... 뭐 ....... 이제 거기서 누가 나를 기억이나 하겠는가

by jardin | 2009/11/24 17:34 | 트랙백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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