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8일
샤갈의 눈내리는 마을
지난 겨울은 5년만에 서울에서 보냈다. 겨울 방학이 보통 한달 남짓한대다가 비행기값마저 비싸니 가난한 유학생은 갈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박사논문 디펜스 후 드디어 편한 마음으로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서울과 경기도에서 맞았다. 예상대로 많은 술자리가 있었고, 학교 선새님들 그리고 친구들을 만났다.
하여, '21세기 연합' 이라는 이름때문에 매년 12월 21일에 한다는 송년회도 오랜만에 나갈 수 있었다. 나처럼 유학을 갓 마치고 좋은 직장을 잡아 막다니기 시작한 동기가 '동'을 떠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나왔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 학번 위로의 형이나 누나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같은 '과'로 엮인게 아니라 하고 있는 일, 종사하는 직업들이 다양했다, 오년 만에 만나니. 두학번 아래이지만 나보다 백배는 듬직한 총학생회장 출신 후배는 판사가 되어있었다. 다수의 녀석들이 그렇게 법조계에 종사하고 있었고, 내가 한국을 뜨기 전 고시 공부를 하던 친구들 중에는 굴지의 재벌회사, 보험회사, 증권회사, 벤처기업 법무팀장. 뭐, 그리고 내가 잘 모르는 연구소나 회사에 다니는 공/자대 출신 후배들 얼굴도 오랜만에 보았다. 더 친한 친구는 여전히 공부를 하고 있고, 많이 친한 후배들은 박사논문을 쓰고, 하나는 잘나가는 회사의 팀장이고 그랬다. 그리고, 단 한명, 진보신당에서 일하고 있는 후배도 나왔다.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동안의 삶을 슬쩍 슬쩍 드러내주기도 했다. 오랜 공백기간이 있던 나는 누가 결혼은 했고 아이가 몇인지, 지금은 어디서 사는지의 입력된 정보가 거의 전무하여 그들의 대화 속에서 슬쩍슬쩍 엿들어서 대화에 끼어야 했다. 현재에 대한 이야기는 과거의 무용담으로 이어지고 그 무용담에 등장한, 그 자리에 없는 인물들에 대한 대화로 이어지며 밤은 깊어갔다. 강남역의 1차 고깃집에서 2차 호프집으로 옮기는 동안 몇몇은 먼저 자리를 뜨고, 다른 이들이 뒤늦게 모임에 동석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거기서 예전에 친하지 않던 사람들과 문득 더 편한 기분이 들어, 오히려 잘 알던 친구들보다 더 많은 대화를 했다.
우리는 이제 같은 꿈을 꾸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꿈 자체를 꾸고있지 않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주어진 자리에서 당장에 닥친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치워나가는 것이 외려 우리의 공통된 정서이자 관심사 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모두 말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꿈을 꾸기위해 그곳에 발 담그고 있는 후배에게 어떤 연민과 부채의식을 같고 있었다. 나도 그 공기에 휩싸여 후원금이랍시고 몇십달러를 녀석의 술취한 손바닥 위에 얹어주었던 것 같다. 과거에도 그랬고 요즘도 그러한 몇몇은 우리가 40 대가 되었을때, 어딘가의 중심이 되었을 때, 우리가 다시만나 세상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감자탕과 소주가 뒤섞인 취기로 말했다. 그리고 그 당시 나도 그 말에 공감했던 것 같다.
저녁 7시에 시작한 모임은 다음날 3시 감자탕집에서 끝났다. 얼마 안있으면 모두들 생활 전선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연말 송년회 시즌에 강남역에서 택시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1시간여를 그렇게 뉴욕제과 앞에서 아우성 치던 끝에 집이 먼 몇몇을 태워 보내고 나머지 일곱명은 러시아워를 피해 비디오방에 가기를 결정했다. 이럴땐 에로 영화를 봐야한다는 이들과 이와는 상관없이 아무 영화나 틀어놓고 잠을 청해야 한다는 이들이 잠시 옥신각신 한 끝에 커다란 방을 빌려 새우잠이 들었다. 그러나 한 녀석은 취해 갑자기 사라지고 나머지는 자다 농담하다 비디오 보다 그렇게 두시간을 때우고 강남역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항상 마지막에 남는 감상은 함께 취한 이들과 등을 돌리고 나서부터이다. 술기운과 체온과 말에 의해 형성된 그 온기와 열정은 다시 나혼자 이 세상에 남겨져 싸워야 한다는 현실에의 강한 인식으로 뒤바뀌어 버리면서 낙관과 불안, 연대와 고립의 그 복잡다단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진입한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소설가 박상우는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에서 술취해 돌아오는 80년대 말 젊은이들의 환멸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정치의 시대가 끝나고 그들의 청춘도 가버렸다. 그날밤, 그러나, 우리는 환멸을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오랜 회합으로 인한 어떤 따스함과 세대적 연대감이라는 것을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도 느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는 혹은 우리는 어떻게 될까?
# by | 2009/11/08 07:08 | 트랙백 | 덧글(0)




